대학사계

세계 최고의 대학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하버드대를 꼽을 것이다. 물론 하버드가 모든 측면에서 최고일 리 없다. 학생, 교수, 재정, 연륜, 사회 평판 등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또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어느 한 곳이 독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몇몇 기준이나 학문 분야에서 하버드가 최고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이것은 평균에 불과하다. 하버드 출신이면 무조건 우수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바닥에서 헤매던 친구들은 다른 괜찮은 대학의 평균 수준만도 못할 수 있다. 또한 대다수의 하버드 졸업생은 자신의 능력 못지않게 하버드라는 이름이 제공하는 독점이윤 덕을 본다. 그러니 힘깨나 쓰는 가문에서는 자식들의 편한 하버드 입성을 위해 이런저런 기부에 열을 올린다. 평범한 집안 자식이라도 실력이 좀 된다 싶으면 하버드 문턱을 밟아보려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보통 기업이 어떤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면 남들이 넘보지 못할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이나 정보가 있어 독점이윤을 누리기도 하고, 정부의 특혜나 담합 등 좀 애매한 방식으로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만들어진 독점이윤이건 그것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자체가 강력한 도전 유인이 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에 투자하건 정부 로비에 힘을 쏟건 경쟁자들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교육과 같이 확실한 수요 기반이 있는 산업이라면 공급자간의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 예산으로 대학 교육을 뒷받침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의 후진국이 아니라면 한 대학이 다른 대학들을 압도하는 일은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초 명문대 간의 경쟁이라면 약간의 격차를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래서 하버드가 돋보이는 것이다. 비록 일부 분야이고, 그나마 압도적 우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독점적 위치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대학들과는 다른 측면이 있을 것이다. 명문 대학답게 교수들의 학문적 업적이야 당연히 탁월하지만 다른 좋은 대학들에 견주어 그렇게 특출하다고 보긴 어렵다. 어차피 연구는 대학의 경계를 넘어 교류되기 때문에 대학 간 평준화가 비교적 빨리 이루어지는 부문이 교수 수준이다. 보다 중요한 측면은 학생들의 교육이 아닌가 싶다. 똑같은 학생이 하버드에서 4년을 보냈을 때와 다른 곳에서 같은 기간을 공부했을 때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분명해진다. 물론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하버드대 졸업생이 좀 더 멋진 교육을 받고 졸업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버드 학생들의 교육 환경이나 공부 과정을 소개한 책들은 많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다. 원래 제목은 전혀 다르지만 번역을 이런 식으로 하면서 반응이 커진 것이다. 나도 예전에 하버드란 제목에 낚여 이 책을 사보았는데, 그저 그랬다. 번역도 어색하고 내용도 흔해 빠진 드라마 수준이었다. 어차피 이런 책들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긴 어렵다.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사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버드’ 자만 붙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도대체 그들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일등에 집착하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잘난 척하는 책’들이 탐탁치가 않다. 대체로 왜곡이 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독자에게 그렇게 비치는 경우도 많다. 지금 이 책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 하지만 남들 눈에는 미화와 과장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버드 학생들의 열정과 용기가 어떻고 하는 식으로 떠드는 것은 다 웃기는 얘기다. 성공을 미화하는 일은 어렵지 않고, 이는 쉽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갈 수 없거나, 가지 못한 곳은 누구에게나 미련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하버드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그들은 당장의 수업 과제에 치여 딴 생각하기 힘든 평범한 젊은이들일 뿐이다. 하버드 학생들이 공부벌레라고 하는데 이것도 가소로운 얘기다. 공부로 치면 우리나라 신림동 고시생을 따라가기 힘들다. 개인적 노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독립 영역이다. 개인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환경 하에서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목표가 주는 유인과 환경이 주는 효율이 개인의 노력과 그 성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버드와 신림동은 아주 대조되는 목표와 환경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적지 않은 수의 우리 학생들이 캠퍼스에 머물지 못하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하는 것은 젊은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우울한 자화상이지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고시생의 목표가 훨씬 더 선명하고 먼 곳을 향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목표를 잡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아직 여린 그들에게 너무 무겁고 고통스런 짐일 수 있다. 나아가 그들 대다수는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절망과 자학이란 후유증을 겪어야 한다. 반면 하버드 학생들은 몸이 가볍다. 대학이 제공하는 환경과 목표에 적응하는 일에만 몰두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실력이 쌓이게 되고 졸업 후 택할 수 있는 선택도 다양하게 다가온다. 우리처럼 외줄타기 커리어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다른 대학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간에 프로그램의 차이가 있고 경쟁과 압박의 강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하버드가 하버드인 이유의 절반은 대학이 속한 사회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버드 못지않게 좋은 대학이 미국에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버드가 하버드인 이유의 나머지 절반은 무엇일까. 아무리 외적인 환경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대학마다 특유의 교육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곳에서 겨우 박사과정 몇 년을 보낸 내가 이런 질문에 답한다는 것은 오만일 수 있다. 나 역시 학생으로서 당장 주어진 목표에 집착하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물론 당시에도 내가 학부를 다닌 서울대와는 비교가 가능했지만 그 선을 넘어선 평가는 하기 어려웠다. 다만 이후 예일대에서, 다시 귀국해 이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새삼 하버드의 교육이 왜 좋았는지 느껴질 때가 있다. 한마디로 하버드 학생들은 복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좋은 교육을 받는다는 의미다. 그 정도 교육을 받고도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하버드의 교육은 한마디로 개성 있는 엘리트 교육이다. 우수한 자질의 학생들을 받아 색깔 없는 보통 사람으로 만드는 대한민국 일류대학의 묵사발 교육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버드대 입학 정원은 학부건 대학원이건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우수한 재원들만 뽑아 신나게 말달리는 교육이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학생을 선발할 때 객관적인 성취도 못지 않게 개성과 잠재력을 고려한다. 주입식 지식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창의적 교육에 강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한번 뽑은 학생은 가급적 끝까지 데리고 가는 체질이다. 일단 많이 뽑아놓고 경쟁을 통해 중도 탈락시키는 다른 곳들과는 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식 경쟁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교육자들이 있는데, 이런 근시안적 사고가 멀쩡한 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평균보다는 개성을,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숨어있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하버드식 교육 때문에 실제 졸업하는 학생들 간의 편차가 심한 것도 사실이다. 하버드 졸업생 중에 생각보다 찌질한 친구들이 많은 것도 개성 위주의 풀어주는 분위기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당장 쓸모 있는 지식의 습득을 평가기준으로 삼는다면 하버드의 랭킹은 한참 밑으로 처질지 모른다. 공부하던 시절 들은 얘기인데, 하버드와 MIT 경제학 박사를 모두 채용해본 어느 미국 기업인의 평가가 재미있다. MIT 졸업생은 회사에 금방 적응하고 일도 척척 잘해내는데 비해 하버드 졸업생은 도대체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슨 과제를 주면 해결할 생각은 않고 문제 자체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한다고 했다. 하긴 생각이 너무 많으면 진도가 잘 안 나가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힘이 제대로 풀리면 기업을 먹여 살리고 사회를 움직이는 스타가 탄생하게 된다.

하버드대 학부생들이 전공을 택하는 이유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멀리 보며 미래를 설계하는지 알 수 있다. 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 중의 하나가 경제학인데 이는 한국 학생들도 많이 선택하는 분야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 이유일 것이다. 하버드 학생들 사이에서 경제학이 인기 전공인 것은 이것이 사회문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방법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배우다 보면 수학을 응용한 논리성, 통계를 이용하는 구체성, 이론의 역사적, 제도적 배경에 대한 안목, 일상생활과 연결되는 현실성 등을 고루 접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다른 전공을 택한 학생이라도 경제학 기초 과목은 거의 다 듣는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다면 로스쿨이나 비즈니스스쿨과 같은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경제학을 전공하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당장 취업이나 자격증 시험에 도움이 되는 분야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학도 구체적인 기업 활동을 주제로 삼는 경영학의 인기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부터 해야 하는 우리 학생들 입장에서는 당장 내보일 수 있는 실용적 지식의 습득이 더 시급한 일일 것이다.

물론 다른 미국 대학에서도 경제학을 기본 전공으로 택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들의 커리어 설정 방식도 하버드 학생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하버드가 조금 다른 점은 문학이나 역사와 같은 인문학 전공의 인기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다루는 철학 과목도 학생들을 끌어 모은다. 전문 지식을 쌓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의 그릇의 크기를 기르는 일에 학교와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인문 교양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응용 학문 분야를 고루 갖추고 있는 것이 하버드의 강점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선택에 맞추어 이론과 응용, 사회와 과학, 역사와 철학을 강의실과 세미나실에서 고루 접할 수 있다. 이런 유복한 교육 환경을 갖춘 대학은 세계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버드대의 공부벌레라는 말에 현혹되는 것은 실제 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뭔가 달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잠을 줄이며 열심히 공부해서 그런 열매를 딴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버드 명성의 절반은 교육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는 그 사회가, 나머지 절반은 개성 있는 엘리트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대학 당국이 만든 것이다. 학생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과 목표하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지점에서 구체적인 커리어 선택을 강요당한다. 주어진 공부는 열심히 하되, 미래에 대한 결정은 여유를 갖고 많은 생각을 해가며 내리는 것이 현명한데도 말이다.

하버드 학생들이나 우리 학생들이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모두 벌레처럼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목표와 환경일 것이다. 만일 우리 학생들에게 하버드 수준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학교에서 제시하는 커리큘럼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 그들 역시 뭔가 다른 지성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미래가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 학생들도 환경적인 한계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넘어선다면 얼마든지 세계 수준의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11.09.12)